낙서장/일기

즐거운 나의 하루

catengineering 2025. 5. 9. 07:27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특정 상황에 어울리는 노래 듣기」이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아는 노래들이 많아지고 적재적소에 배치할 노래들이 늘어난다. 삶의 풍요로워진다. 이렇게 하루의 끝에 일기를 쓰는 지금 내가 듣고 싶은 노래는 바로

 유희열과 신민아가 부른「즐거운 나의 하루」이다. 

 

 전날 오전 8시 쯤 남들 출근할 때 연구실에서 퇴근해서, 오전 9시가 다 넘어서 집에 와서 잠이 들었다. 그리곤 3시 7분에 깼다. 정확히 기억한다. 교수님이 오후 3시에 뭘 하자고 오전에 물어봤었는데, 답을 못했었다. 교수님도 내가 늦게 잔 걸 알아서 그냥 그런대로 잘 넘어갔다. 연구실에서 오전 5시에 너무 배가 고파서 배달시켜 먹고 냉장고 안에 처박아둔 음식을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었다. 반은 남기고 다시 냉장고에 처 박아뒀다. 

 그리고 오후 4시, 머리가 이제 꽤나 길어서 안 감아도 티가 잘 안나기 시작한다. 할 게 많아서 그대로 세수만 하고 연구실로 직행한다. 운 좋게 자전거 하나가 있어서 타고 갔다. 도착해서 어버이날이라 급하게 부모님한테 전화 한 통 하고, 며칠 간 끊었던 카페인이 땡겨서 몬스터 한 캔 마시고 연구를 한 2시간 바짝 집중해서 했다. 순조롭다. 

 그리고 오후 7시 반, 예정된 스터디가 있다. 1시간 반 동안 연구실 다른 분의 강의를 들었는데 꽤나 흥미로워서 재밌게 들었다. 

 그리고 오후 9시 7분, 운동을 하러 신나게 출발한다. 오늘은 가슴하는 날이다. 오늘은 부스터도 안 마셨는데 이번 연휴 때 러닝을 하고 웨이트를 푹 쉰 덕인지 무게가 쭉쭉 밀린다.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벤치 87.5kg를 본 세트로 5곱5를 성공했다. 다음 번은 이제 90kg이다. 얼마나 좋았는지 운동 일지에도 행복감이 묻어 나는 것 같다. 마저 윗가슴, 삼두도 해줬다. 그리고 샤워하고 다시 연구실 행.

 그리고 오후 11시 15분 연구실 도착해서 밥을 먹는다. 닭가슴살 한 덩이와 현미밥 햇반 210g 2개를 먹는다. 반찬은 펩시 제로 콜라 190ml 하나이다. 도시락을 싸올 걸 그랬다. 계란 후라이라도 부쳐올 걸 싶다. 나는 솔로를 보면서 재밌게 먹었다. 요즘 애니를 보다가 볼 게 없어서 나는 솔로로 다시 돌아왔다. 안 본 기수가 그새 많이 쌓였다. 이렇게 식사가 아닌 연료 주입을 마치고 나니, 1시간이 지나있다.

 그리고 새벽 12시 15분, 다시 연구를 시작한다. 나름 순조롭지만 다시 막힌다. 예전 같으면 여기서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겠지만, 이제는 받지 않는다. 뭐 인생이 다 그렇지. 그냥 다시 생각을 시작한다. 될랑말랑 하는 상태가 계속 된다. 언젠가는 어떻게든 될 거란 걸 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렇게 4시간 연구를 했다.

 그리고 새벽 4시, 남들은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에 단지 늦게 일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열심히 사는 척을 해본다. 러닝을 간다. 이번 주는 이미 연휴 기간에 3번 35km 달려서 달릴 필요가 없는데, 달린다. 그 이유는 새로운 러닝화가 왔기 때문이다. 낡디 날은 5년도 다 된 러닝화를 신다가 새 러닝화를 신으니 이렇게 푹신할 수가 없다. 신발을 조금 사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원래도 재미없게 역치가 낮게 사는 편이지만 인생을 너무 모래주머니를 달고 사는 건 아닌가 싶다. 5km를 달렸다.

 그리고 새벽 4시 45분, 다 뛰고 나니 신발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 이전에 숨이 너무 가빴다. 트랙 마지막 바퀴를 돌 때 쯤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한다. 오늘 오전 6시부터 가랑비가 온다고 한다. 비를 맞으며 자판기에서 포카리스웨트 하나를 뽑아 마시면서 집으로 간다. 가는 길에 비가 더 쏟아진다. 나는 비가 오는 걸 좋아한다. 정확히는 비를 맞는 걸 좋아한다. 이때를 위해 아껴둔 노래가 있었다. 바로

WOODZ의「Drowning」이다.

 

 내가 너를 듣기 위해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비를 맞으며 Drowning을 들으며 집으로 간다.

 비를 잔뜩 맞았다. 짐이 많은 맥시멀리스트가 되었다. 연구실 출근용 노트북을 포함한 갈아입을 여벌옷 헤드셋 등이 들어있는 메인 크로스백 하나. 러닝용 신발을 담아다니는 신발 주머니 하나. 러닝용 벨트 하나, 러닝용 헤드 밴드 하나 주렁 주렁 매달려 있다. 비를 맞아 머리카락도 미역이 되어버렸다. 

 배달을 시키기에는 돈이 아까워 그냥 라면 하나를 샀다. 다른 것도 하나 살까 하고 김밥 코너를 봤는데 통영식 김밥이 있다. 통영에 통영식 김밥이 있나? 내 고향인데 그런 건 처음 들어봤다. 충무김밥이면 모르겠지만. 그래서 사봤다. 통영에 이런 김밥이 있었나? 두부가 들어간 김밥? 이런 건 처음 봤다. 사기를 당했다.  

 아무튼 사기 당했어도 밥은 먹어야 한다. 계란 2개 풀어서 라면 끓이고, 냉장고에 짬 때려둔 걸 데폈다. 그리고 한 상 거하게 먹었다. 배가 부르다. 

 그리곤 오전 6시 빨래를 돌리고, 샤워를 한다. 집안일이랑 잡무 할 게 있었는데... 그것말고도 설거지, 빨래 널기/개기도 해야 한다. 내일 출근해서 할 것도 많다. 오후 7~9시에는 조교 업무도 해야 한다. 어휴ㅠ

 하지만 이런 재미 없는 삶 속에도 행복이 가득하다. 작년에 우울할 때 하루의 좋았던 점, 행복한 점 3가지 찾기 캠페인을 스스로 했었다. 캠페인의 나비 효과일까 삶 속에 행복이 가득하다. 남들의 기준에는 못 미치겠지만 말이다. 

 

 1. 늦게 일어났지만 해가 떴지만 푹 잘 잤다.

 2. 머리를 안 감았지만 머리가 나름 괜찮았다.

 3. 스터디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왔다.

 4. 그토록 고대하던 벤치 87.5kg를 성공하고 이제 90kg로 진입했다.

 5. 잘 참고 2햇반+닭가슴살을 먹었다.

 6. 의외로 나는 솔로가 재밌었다.

 7. 밤 연구가 꽤 잘 됐다.

 8. 밤 러닝도 재밌었다.

 9. 우중런도 좋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슬보슬 비가 와서 비를 맞아서 너무 좋았다.

 10. 손꼽던 비맞으면서 Drowning 듣기를 성공했다. 

 

 대략 잡아도 행복한 일이 10개나 된다. 연구를 해서 지적으로 성장하고, 헬스를 해서 근력/러닝을 해서 지구력을 성장시켜 체력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확실하게 성장하고 있다. 술도 안 먹고, 주말에 어디 놀러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잠만 자고, 집-연구실-헬스장-트랙-집 만 반복하는 삶이지만 내 삶에는 계속된 성장이 있다. 이게 술 마시는 것 보다도, 놀이동산에 가는 것 보다도 재밌다.

 「즐거운 나의 하루」를 들을 날도 손꼽아 기다려왔었다. 이렇게 되기 위해 1년이란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가... 정말 이젠 바랄 것이 없다. 그냥 이런 하루하루가 지속되고, 내가 꾸준히 성장해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그런 생각 뿐이다. 이젠 사실 더 큰 고통이 와도 좋다. 이젠 그런 고통도 이겨낼 자신이 생겨버렸다. 

 이렇게 글 쓰면 뭐 하겠는가... 설거지나 하러 가야겠다. 아 참, 빨래도 널어야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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